국문초록:본 연구는 18세기 이후에 중국과 한국의 혼례복식에 대한 것이다. 인류사회에서 종족보존을 위한 남녀의 결합은 예날부터 존재하였으며, 자연 환경, 역사 등 여러 가지 요인 때문에 세계각지는 자신만의 고유한 혼례예식과 복식 문화를 가지고 있다.
조선의 남자 혼례복으로는 흉배가 없는 紅團領과 黑團領이 되었다. 중국 한족 남성들는 평상시의 예복인 長衫과 長褂를 혼례복으로 사용하였다. 조선의 여자 혼례복으로는 紅長衫·園衫·唐衣·袡衣으로 사용하였다. 중국 한족 여자의 혼례복은 明代 命婦服에서 기원한 鳳冠·霞帔 기본으로 하였다.
이 연구를 통하여 전통혼례복의 원형을 살펴 보려 하였다. 연구 과정을 통하여 양국 혼례복의 외형적 특성뿐만 아나라, 혼례복의 외형과 양식에 영향을 미친 전반적인 복식문화의 특징을 알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키워드: 중한 대비 전통 혼례복식 문화 혼례복
摘 要:本论文是对18世纪后的婚礼服进行研究。人类社会上为了种族保存而进行的婚礼很久以前就已经存在。由于自然环境,历史等各种原因各国各地的婚礼仪式及婚礼服饰文化也都有着自己的特色。
朝鲜时代的男子用没有黼的红团领或黑团领作为婚礼服,而中国的汉族男子把平时用作礼服的长衫,长褂作为婚礼服。朝鲜时代的女子把红长衫,圆衫,唐衣作为婚礼服,而中国汉族女子则把从清代命妇服起源的凤冠霞帔作为婚礼服。
同时也追溯现在通用婚礼服的形成过程及其原型。不仅对两国传统婚礼服的外形上的差异进行对比,同时也研究当时对婚礼服外形产生影响的文化特性。
关键词: 中韩对比;传统婚礼服饰;文化;婚礼服
본 연구는 18세기 이후의 양국 혼레복식 연구를 통하여 현재 통용되고 있는 한국과 중국의 전통혼인 의례의 형성과정 및 현재 통용되고 있는 전통혼례복의 원형을 살펴 보려 하였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양국 혼례복의 외형적 특성뿐마 아나라, 혼례복의 외형과 양식에 영향을 미친 전반적인 복식문화의 특징을 알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조선의 남자 혼례복으로는 흉배가 없는 紅團領과 黑團領이 되었으나, 紅團領이 더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신랑의 대례복은19세기 말에는 흉배 달린 藍色 團領으로 바뀌었는데, 이것은 黑團領으로 예복을 통일한 당시의 복제개혁과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대의 남자 혼례복은 청조의 官服에서 기원한 吉服을 착용하였다. 吉服은 용무늬가 전체족으로 수놓인 蟒袍, 가슴과 등에 품계를 나타내는 補를 단 補服으로 구성되었다. 蟒袍라는 명칭은 옷에 수놓 용무늬에 기원한 것으로, 망포는 신부에 따라 용의 무늬와 색상과 포의 트임을 달리한 것이 특징이었다.
조선의 여자 혼례복으로는紅長衫·園衫·唐衣·袡衣가 있었으나 일반적으로 홍장삼과 원삼이 착용되었다. 당의는 大禮보다는 見舅姑禮에 주로 착용되었다. 당의는 大禮보다는 見舅姑禮에 주로 착용된 것으로 보이며, 袡衣는 유학자들에 의해서 혼례복의 이상형으로 제시된 것으로 보인다. 영· 정조대에 걸친 가체 금지령 이후 여자의 예관은 화관과 족두리의 제도로 압축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활옷의 명칭은 당시 문헌에서 찾아 볼 수 없으나, 수를 놓은 홍장삼을 혼례복으로 입었다는 내용이 있어 당시의 활옷은 紅長衫과 동일시되었거나, 홍장삼의 일종이었다고 본다.
한족 여자의 혼례복은 明代 命婦服에서 기원한 鳳冠·霞帔 기본으로 하였다. 霞帔아래에는 용무늬가 수놓인 蟒襖를 입었고, 하의에는 붉은색의 치마를 입었다
혼례복 각각의 세부 항목에 대한 연구는 표면적이고 개괄적인 연구에 머물렀다는 한계점을 갖는다. 왜년하면 혼례복식은 다양한 종류의 복식과 다양한 장신구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전체 혼례복의 구성과 원형 양식적의 변천에 대한 더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