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최치원은 신라의 가장 대표적인 시인인데 857년에 경주에서 태어났고 자를 고운, 또는 해운이라고 하였다. 그는 당나라 유학시기부터 한시창작을 시작했다. 본 논문은 최치원 한시중의 영물시를 주제로 하여 의논한다.
본론에서 최치원의 생애와 그의 한시 특징을 간단하게 소개하며 주로 최치원 한시중의 영물시를 분석하며 최치원이 자기 성찰을 보이는데 목적을 둔다.
이상으로 본 최치원은 한국 한문학의 새장을 연 開山始祖로 할 수 있다. 그는 입당 시기는 경문왕 8년으로서 만당 중엽에 해당하기 때문에 당시의 특징 중 하나인 주정적 흥취 위주의 내면 세계와 綺麗한 품격을 띠고 있다. 그리고 당나라에 있었을 때 날로 쇠퇴하는 당나라의 현실과 도처와 귀국한 후 나라의 혼란한 국면을 만나기 때문에 그의 한시중에 항상 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포부등 내면 세게를 알게 한다. 특히 그의 영 물시에 이런 내면세계를 잘 드러낸다. 영물시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자연물을 소재로 하여 단순히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에 대해서만 표현한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을 통해 자신의 뜻을 담고 있다. 즉, 몰상의 특징적인 모습을 객관적 시각으로 잘 포착하여 자신의 삶에 투영시키고 있는 것이다. 고운은 재당 유학시절 이방인이라는 한계에 부딪히 면서도 세사에 대한 포부를 간직하였다. 그러나 신라에 돌아와서는 신분적 한계와 시대적 상황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발휘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세상은 그를 소외시킨 채 위태로운 바위나 높은 산꼭대기에 처하게 하였다. 그는 이러한 곳에 처한 물상들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 주지 않고 소외시킨 세상에 대해 한탄하였다. 그러면서도 <石上矮松>과 같은 시에서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강한 믿음과 미래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최치원은 자신이 소망하는 이상과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현실에서 괴로워하였고 그런 모습은 작품에 그대로 형상화되어 있다. 이렇듯 고운의 영물시에 등장하는 물상은 단순하고 평범한 물상의 모습이 아니라 최치원 자신의 처지와 현재 상황이 투영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최치원은 이러한 물상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자신의 존재를 성찰하는 계기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