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개화기 이전의 조선시대에 있어서 한국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남성보다 훨씬 낮았다. 한국전통사회에서 여성들에게 주어진 지위는 그들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적 존재양식으로서 그와의 다른 삶의 방식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연이어 발생한 전란과 사회구조의 변화 그리고 경제구조의 파탄 등에 의해서 중세적 신분 질서가 붕괴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조선 후기에 전래된 기독교는 한국여성들의 의식변화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고 여성의 지위변화와 여성운동의 태동에 있어서도 기능적으로 작용하였다. 기독교는 직접적인 포교를 피하고 주로 교육 사업을 중심으로 한 간접적인 전도의 방법을 택하였다.
조선시대의 여성교육은 여성으로서의 부덕을 익히기 위해 가정에서 행해진 가정교육이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여성교육은 학문적인 면은 소홀히하고, 그 교육내용 역시 유교의 영향으로 여성들에게 편협 된 점이 많았다. 한국의 여성교육이 제도적 교육기관을 통하여 체계적으로 학문을 익혀 나가게 된 것은 개화기에 들어서면서 근대화 과정과 함께 비로소 시작되었다. 이러한 과정속에서 기독교가 한국여성 지위에 주는 영향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기독교가 한국여성 지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보고자 한다.
기독교가 한국의 개화에 끼친 영향은 거대하다고 하겠다. 특히 한국사회가 여성의 존엄성과 가치를 깨닫게 된 것은 기독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한말 개화기 연구에 뚜렷한 업적을 남기고 있는 건국 대학교의 신복룡 교수는 ‘한국의 개화사에서는 기독교의 긍정적 요소를 부인할 수가 없고, 특히 한국 여성사나 여속사(女俗史)의 면에서 기독교가 끼친 요소를 간과할 수는 없다. 한말에 이 땅에 들어온 선교사들의 눈에는 여성잔혹사가 기이하게만 보일 수밖에 없었고, 이를 고치기 위해 여성교육을 실시함으로써 한국여성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라고 평가한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제도 속에서 신음하던 당시 한국의 여성들은 기독교의 복음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찾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한국여성의 생활상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