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가사는 조선조에 들어와서 본격적인 발전을 해왔다. 조선조 전기 가사의 주된 경향을 집야적으로 보여주면서 문학적으로도 수준급에 이른 사람이 정철이다. 그리고 정철의 가사작품 중에서 소외된 상황을 노래하되 임과 이별한 고독한 여인으로 바꾸어 형상화함으러써 정서적 함축성과 형실적 암시성을 노래한『사미인곡』과『속미인곡』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두 작품은 현실성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어의 시어화함과 그 정교한 배열, 그리고 가락의 비장함으로 하여 동방의『이소(离骚)』, 『출사표(出师表)』로 평가되어 왔으며 이 같은 평은 현제에 와서도 계속된다. 유명한 한국학자 이수광은『사미인곡』과『속미인곡』을 조선조의 가장 참된 작품이라고 지적하였다.
송강정철의『사미인곡』과『속미인곡』을 연구하면서 조선시대 가장 찬란한 문화를 더 알게 된 동시에 정철의 일생을 알아보면서 그가『사미인곡』과『속미인곡』을 쓰게 된 필연성도 함께 찾아낼 수 있었다.
두 작품은 다 정철이 50세 때인 1585년(선조 18) 동인(東人)이 합세하여 서인(西人)을 공격했는데 서인의 앞장을 섰던 송강은 부득이 고향인 창평(昌平)에 내려가 4년 동안을 지냈을 때 지었다. 그리고 다 충군사상을 표현했지만 그 충군사상도 다른 점이 있다. 두 작품의 내용뿐마 아니라 표현, 어조 등도 다른다. 그다른 점은 논술하면서『사미인곡』과『속미인곡』은 단순한 연속이 아니라 연군의식과 현실적 갈등이라는 대립적 주제를 놓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작품들이었다. 그리고 두 작품은 임에 대한 감정 그리고 나라에 대한 충성은 같지만 각자는 자기만의 독특한 예술성도 지니고 있으니 참된 작품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미인곡(美人曲)’계 가사란 아름다운 여인이나 임금을 제재로 하여 ‘미인’이라는 낱말을 복합시켜 만든 가사작품이다. 한국 가사문학 작품에서 미인이란 용어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하나는 용모가 단정하고 수려한 여자를 일컬음이요, 다른 하나는 임금(君主)을 지칭할 때이다.
두가사 모두 균형적인 장면 배합과 시상의 조화가 잘 되어 친밀감을 더해 주고 있고 애상적인 정한이 마디마디 배어 있어 그 심기의 곡진함을 느끼게 한다.[6]
『사미인곡』의 결말에서 호소되는 죽어서라도 임을 만나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이러한 순결한 충정은『속미인곡』의 끝머리에서도 표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어느 정도에서 서로 통하고 있다.
두 작품의 차이점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먼저 『사미인곡』은 님과 이별한 여인의 독백으로, 『속미인곡』은 사미인곡의 여인과 다른 여인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사미인곡』은 독특한 형식을 취했으나 감정으로는 좀 숨기는 편이고『속미인곡』은 대화체라서 감정을 명확하게 표하고 사람들에게 잘 보여주는 편이다. 그다음은 두 작품이 보여주는 형상화의 방법도 아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사미인곡』은 사계절에 따라 임에 대한 감정의 깊이 더 심해지고『속미인곡』은 새로운 화자를 설정하여 대화형식을 통해 현실적 문제를 다룬다. 또 두 작품은 화제의 전개과정과 결론이 다른다. 『사미인곡』은 함축된 방식으로 감정을 표하고『속미인곡』은 처음부터 대화로 사유를 말했다.